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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한인회 잡지'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8.31 [교민소식, 2006년 9월호] 한국은행 홍콩사무소 하용이 소장을 만나다


홍콩한인회 잡지 교민소식에 연재했던 인터뷰 기사입니다.
멋들어진, 혹은 소박한 그림들과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도자기들로 고풍스러운 느낌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소장실에는 본잡지의 표지에 橋民消息이라는 제호를 써주신 여초 김응현 선생의 힘찬 손놀림의 휘호가 걸려 있었다. "君子務本" (군자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근본을 세우고자 묵묵히 일한다.) 학식과 덕성과 용기를 갖춘 참된 지성인인 군자를 지향하는 방주인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듯 했다.

미리 받아본 간단한 이력에는 1977년 한국은행에 입행하여 현재까지 근무, 한국외대, 성신여대, 동국대 등 출강경력, 2004년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안보과정 졸업, 한국은행 불교회 회장 역임, 한국은행 자원봉사회 활동 등 다양한 활동사항이 적혀있어 어떤 인물됨을 지닌 사람인가 내심 궁금했는데, 인터뷰 내내 온화한 표정과 정중한 어투, 논어의 <학이편>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걸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항상 배우고 익히는 것에 힘쓰고, 가르치고, 나누는 군자로서의 삶을 실천해 온 결과라는 것을.
지난 4월부터 한국은행 홍콩 사무소장으로 근무중인 하용이 소장을 만나보았다.





홍콩에 온지 4개월이 넘어가는데, 홍콩 생활에 익숙해 졌는지...

홍콩에 처음 도착한 날이 4월 1일로, 홍콩의 스타 장국영이 자살한 2주년이 되던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마침 저희 사무실이 만다린 호텔 바로 뒤에 위치한 알렉산드라 하우스이어서 감회가 색다르더군요. 홍콩 생활은 어릴적 우리들의 영웅이었던 변호영 교민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지인들, 그리고 사무소 직원들의 도움으로 연착륙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매일 새벽 집에서 피크타워까지 걸어올라가 빅토리아 피크를 한바퀴 돌아내려오면서 한시간 반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맑은 공기도 마시고, 맑은 정신에 업무 구상도 하고 땀도 쫙 뺍니다. 덕분에 체중도 7Kg이나 줄고, 홍콩에 온 후 병치레 한번 하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업무가 없기 때문에 생소한데,
한국은행 홍콩 사무소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국제금융 중심지인 홍콩의 이점을 적극 활용하여 국제투자은행들의 경제분석보고서를 신속히 수집, 정리하여 본부에 보고함으로써 당행의 통화정책 수립에 참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 사무소가 조사한 내용과 우리나라의 경제정책관련 자료 등을 홍콩 주재 한국계 금융기관 및 상사들에게 제공하여 이들 기관 및 업체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홍콩 한인회, 한인상공회 및 한국국제학교 등의 사업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홍콩 한인사회의 단합과 긴밀화에 이바지하고, 한인사회의 국제 금융지식관련 문의업무에 각별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홍콩국제금융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국제투자은행들과 건전하고 효율적으로 거래함으로써 우리나라 외환자산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하는 한편 홍콩금융관리국(HKMA)과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등 홍콩 주재 국제기구와의 교류활동을 적극 전개함으로써 한국의 금융위상 강화와 금융허브로서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홍콩한국금융기관협의회에서 한국국제학교에
책을 기증하는 뜻깊은 일을 한다고 들었는데...


최근 한국국제학교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교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재단이사의 한 사람으로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번 사건으로 홍콩교민사회 구성원들간에 잠시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여졌지만, 결국 그 안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국제학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튼실하고 눈부신 발전을 염원하는 전체 교민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선 저부터 한국국제학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7월 14일 학교를 견학하였는데, 방학 중이라 학생들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서 사물함 교체공사와 태풍으로 훼손된 외벽의 도장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서실에 들어서자 예상보다 빈약한 소장도서가 눈에 띄어 안타까웠습니다. 김석수 교장선생님이 그동안 여러차례 교민 여러분들께서 개인소장 도서를 기증해 주셨으나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는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최근 사건으로 교민 여러분들께 마음의 빚을 지고 죄송스러웠던 저는 홍콩 한국금융 기관협의회에 부탁말씀을 드렸습니다. 한국금융기관협의회에서는 감사하게도 흔쾌히 수락해주시고, 십시일반 뜻을 모아주셔서 10월9일 한글날 전에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학년별 권장도서 331권을 기증하기로 하였습니다.




한국은행 자원봉사회의 발기위원, 운영위원,
부회장을 거쳐 회장까지 역임했다고 들었는데,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한국은행 본점에 있는 <자원봉사회>는 은행에서 가까운 회현동 쪽방동네 독거 노인및 결손 가정 청소년 등 소외받은 우리의 이웃들을 찾아뵙고, 적으나마 물질적인 후원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 나자로의 집 지원, 밥퍼 등 무료급식시설에 지원 및 배식 봉사하는 일, 소년의 집 어린이들과 놀이공원 나들이 하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전 직원들이 매월 월급에서 자발적으로 정성을 모아 연간 5,000만원을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남을 위하여 자신의 돈을 내어 놓고, 시간을 나누는 마음 씀의 훈련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봉사활동은 결국 본인 스스로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돌려받는 경험이 되곤 해서,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앞장섰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매달 찾아가는 회현동 쪽방동네에 할머니와 함께 사는 3형제가 있었습니다. 처음 찾아갔을 때 작은 아이들은 기뻐했지만, 5학년쯤 되는 형은 마음이 닫혀 있어서 우리를 달갑지 않아 했습니다. 그러나 후원금을 전하기 위해 매달 찾아가고, 생일때는 케익도 사서 찾아가는등 꾸준히 찾아가길 몇 개월이 지나자 어느 날 함께 가는 젊은 직원에게, "형, 나 짜장면이 먹고 싶어요."라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 때의 기쁨과 보람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꾸준히 계속 이 가정을 돌보고, 3 형제의 대학학비까지 책임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내세우기 위한 봉사나, 거쳐가는 봉사가 아닌 진정 사람을 생각하는 꾸준한 마음의 나눔이 되도록 말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세상에 지쳐 혹시 불량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범죄자가 되고 난 후 치뤄야 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그 편이 훨씬 경제적이고 생산적이라는 것이 저희의 믿음입니다.



인생의 좌우명은..

나이도 들어가고 외국에 나오니 고등학교때 무작정 외웠던 논어, 학이편이 새롭게 와 닿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논어 학이편 제 1장인 '항상 배우고, 꾸준히 익히니 기쁘지 아니하랴,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언짢아 하지 않으니 참으로 군자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마지막 장인 제 16장  '남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모르는 것을 걱정하라.'는 말씀을 새기고 있습니다. 제 방에 있는 이 휘호(君子務本)는 지금부터 딱 20년 전인 1986년 제가 파리사무소에서 조사역으로 근무했을 때 파리에서 개최된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문화행사>에 참석하신 여초 김응현 선생님께서 내려주신 것으로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하 소장은 최근에는 한국은행의 직원으로서 우리나라의 경제를 위하여 '自利利他'하는 방법, 즉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도모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스스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타인에게 봉사하는 그의 삶을 보며 난초의 청아한 향이 느껴지는 듯 했다.
Posted by 홍콩달팽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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