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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가족이 만난 사람들] 홍콩한인회 잡지 교민소식에 연재했던 인터뷰 기사입니다.


갑작스럽게 잡힌 출장 일정 때문에 2주전부터 미리 약속해 놓은 강호천 상공회장과의 인터뷰 일정을 바로 전날 취소해야만 하는 곤란한 일이 발생했다. 빽빽한 일정 중에 약속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마감시간 전에 꼭 취재를 해야 하는 터라 날짜변경을 부탁 드렸다.
약속한 날 정시에 상공회관에 도착하니 다른 손님이 면담을 마치고 막 자리를 뜨는 참이었다. 틈 없이 꽉 짜인 일정을 확인하면서 다시 한번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감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강회장은 그러나 인터뷰를 시작하고 업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선하고 젠틀한 인상이 확고하고 신념에 찬 모습으로 바뀌면서 눈빛이 열정으로 빛났다.


 

 상공회활동에 대한 간략한 소개



홍콩 한인상공회는 1976년 7월 설립되어 다가오는 7월1일이면 설립 31주년이 됩니다.  상공회의 설립목적은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상공회를 통하여 회원상호간 친목과 유대를 강화하고 회원사의 권익을 증진하며, 홍콩 한인사회 및 현지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제고시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다른 25개국의 상공회와 함께 홍콩행정장관 자문기관인 IBC (International Business Committee)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홍콩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의견을 제시하는 자리에서 홍콩정부에 한인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며, 정책에 우리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하며, 타국 상공회의소와의 Inter Chamber Meeting 참가를 통해 공동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합니다.  또한 ISD(Information Services Department, 우리나라의 공보처에 해당), Invest Hong Kong, TDC(Hong Kong Trade Development Council, 우리나라 KOTRA에 해당)와 같은 홍콩 정부 각 기관에서 요청해 오는 각종  프로젝트 관련 자료 제공 및 관련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한인상공회의 존재를 알리고, 홍콩한인사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중국 각성 및 지방도시에서 대 한국 및 홍콩 상공회 회원사와의 교류를 위해 홍콩한인상공회에 요청해오는 inquiry 및 업무협조요청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합니다.

정규활동으로는 매년 초 부부동반 저녁만찬회인 신년 하례식을 거행하여 새해를 맞이하고, 하반기에는 골프대회를 개최하여 친목을 도모합니다.  매주 금요일 각 회원사에 경제동향 정보와 상공회 뉴스를 포함한 주간 뉴스를 발송하며, 월간으로 유명 경제연구소의 경제학자들의 발췌 글과 금융단 기고 글들로 편집된 상공소식이라는 잡지를 발행합니다.  주요 경제사안이 있을 경우 상공강좌를 개최하는데, 지난 4월에는 홍콩 증권거래소의 초대로 홍콩 주식시장의 현황 및 상장의 조건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오는 7월에는 홍콩 및 중국에 필요한 인력자원을 한국에서 공급하는 방향 및 '새로운 중국 진출전략' 에 대한 세미나를 산업인력공단과 같이 개최할 예정입니다.  특별사업으로는 한류확산에 도움이 되는 방송사업과 한국어 교육(월-토 매일 오후 6시 30분부터 9시 까지 두 시간 반 동안, 상공회 대회의실에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임회장 취임후 3개월 반,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상공회의 활성화와 회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새 회원사 명부를 준비하고 있는데 회원사가 총 214개 회사로 지난 2월말 205개사보다 약간 증가했습니다.  전회원사의 Word 작업을 상공회에서 직접 준비하여 개별회원사의 일반적 동정을 재확인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홍콩의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사무실을 중국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사업의 목표가 바뀌면서 홍콩을 떠나는 회사들이 연간 5-10개사 정도되므로, 신규회원사가 매년 10개사 이상 되어야 전체 회원사가 비슷하게 유지되는 상황입니다.  3월말 임원회의에서 한시적으로 교포상사에 한해 연회비만 내고, 가입비를 면제해주기로 결정하여 적극적으로 신규 회원사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부터 신규 회원사를 대상으로 상공회 소개와 만남의 장을 열고 있습니다.  5-10개 상사의 회원들을 상공회에 초대하여, 시청각 자료를 통해 상공회의 지나온 발자취와 현황을 소개하고, 끝나고 나서 함께 얌차를 합니다.  

회원들의 반응이 좋아서 신규 회원사가 다 끝나면 기존 회원사 중에서도 상공회관을 방문한 적이 없는 회원사를 대상으로 계속하여 상공회와 회원사간의 만남의 장을 열어가고자 합니다.  약간의 조직변경이 있었는데, 효율적인 사업추진을 위해 기존 6개부서 외에 <방송사업 소위원회>와 <정관개정 소위원회>의 특별부서를 만들어 각각 1차 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정관개정 소위원회>는 이재철 변호사를 간사로 하여, 영문 및 한글 정관을 분석하여 내년 정기총회를 목표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영문과 한글이 일치하는 정관초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방송사업의 활성화, 내실다지기




어떤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재정이 튼튼해야 합니다. 상공회의 주된 수입원은 두 가지로, 회원사들의 회비와 방송사업 수익금이므로 현실적으로 방송사업은 상공회의 살림살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홍콩 내의 한류확산을 촉진하고, 광고주 회원사들을 홍콩과 인근 광동성에 알리는 매체가 됩니다. 이런 방송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방송사업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방송의 질을 높이고, 더 많은 회원사가 광고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방송사업은 1992년 김일고 명예회장님 때 시작되었는데, ATV(채널4)에서 방영권을 구입하여 배당된 시간에 한국에서 구입해 온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회원사의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는 사업입니다.

현재는 토요일 오후 6-7시에 Korean Hour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매주 목요일 6시 반부터 1시간 정도 Pops in Seoul을 통해 한국가요를 알리는 두 가지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광고를 모집하였으나, 지난 4월 경기도지사의 홍콩방문을 계기로 해외홍보를 원하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도 광고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 질 높은 방송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 오고, 좀 더 많은 회원사들이 광고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홍콩에 오래 사시고, 홍콩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계신 교민 여러분께서 홍콩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드라마를 추천해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상공회관 자체 사무실 구입 프로젝트



예전에는 한인회 사무실 한 쪽을 빌려 쓰다가 1992년 김일고 명예회장님 때부터 자체 사무실을 갖게 되었고, 코리아센타 - 무역협회홍콩지부 - Harbour Commercial Building을 거쳐 2003년에 현재의 Blissful Building 3층으로 옮겨 왔으며, 작년 말 사무실 계약을 갱신하는데 렌트비가 거의 두 배에 가깝게 올라 재정적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불필요한 재정부담을 줄이고 재정자립도를 기하기 위해 제17대 회장단은 상공회 자체사무실 구입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류재우 전임회장님이 추진위원장을 맡으셨습니다.  임원단들이 솔선수범해서 기금을 갹출하고, 금융단, 종합상사 및 지사와 현지교포상사 등의 회원사에 기금을 요청하고, 상공회 사무실을 예방하는 분들께도 촌지를 부탁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목표는 350만 홍콩달러의 기금을 모으는 것인데, 지난 6월6일 40명의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홍콩을 방문한 부산 상공회 신정택 상공회장님이 1,000 미국달러를 희사해주신 것을 비롯해 최근 북경으로 발령받은 김장환 부총영사님이 5,000홍콩달러를, 신입회원으로 들어오신 박은애 회원님(DBS, Vice President)이 50,000 홍콩달러를, 신한은행 이희승 지점장님이 귀국하시면서 3,000 홍콩달러를 기부해 주셨습니다.  모금이 쉽지 않은 것인데,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계시니 저희도 하루 빨리 상공회가 자체 사무실을 구입할 재원을 마련하도록 계속하여 여러 노력을 경주할 계획입니다.  회원사 여러분의 관심과 지원을 부탁 드립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와 홍콩과의 인연..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철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개인회사로 취직한 후 1981년 동아실업 홍콩지사장으로 부임했습니다.  한국으로 잠시 돌아갔다가 동아실업 호주 시드니 지사장으로 6년간 지낸 후 개인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사업을 하려다 보니 생활경험이 있고, 인프라 스트럭쳐가 잘 갖춰진 홍콩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홍콩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96년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현재는 전자부품과 교육용 전자장난감을 취급, 생산하고 있습니다.  두 딸들은 각각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 및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중국이 완전 개방되어 눈부시게 발전하다 보니 홍콩의 전통적인 장점과 기능이 약간은 퇴락했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홍콩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장점이 많은 곳입니다.  여러 분야의 한국기업들이 진출해서 중국시장 및 아시아 지역 진출 교두보로서 홍콩지역을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공회는 변화하는 경제상황에 맞춰 회원사의 필요에 부응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변화하고 살아 움직이는 단체가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한인 상공회는 홍콩 내의 한국 기업인들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홍콩 정부 및 여러 공 기관과 여러 방향의 직접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우리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특별한 모임입니다.  재작년 마카오 정부 초청으로 마카오를 방문하여 마카오 행정장관 및 각 분야 대표들과 회의를 가진 것처럼 올해도 대외적인 행사를 구상하고 있는데, 광동성 기업인들과 만남의 장을 가져보면 어떨까 구상하고 있습니다.  홍콩에 등록된 26개국 상공회 중에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영국, 카나다, 일본, 호주, 싱가폴 등 상공회를 벤치마킹 해 좋은 점들을 우리 상공회에 접목할 수 있을지 등도 검토하고, 상공회의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으니 활동에 대한 경중과 우선순위를 가려서 효율적으로 일을 해야겠지요.  회원사와의 거리를 좁히고, 신뢰받고 도움이 되는 상공회를 만들어 나가도록 계속 노력 하겠습니다.  회원사 및 교민 여러분들의 충고와 도움을 부탁 드립니다.


전직사무총장을 두고 있는 일본, 싱가폴 등지의 상공회와는 달리 자기 사업을 하며 활동하는 상대적으로 물리적인 한계를 가진 환경 속에서도 우리 상공회의 회장단과 임원단은 자신의 업무효율성을 높여가며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봉사하는 마음과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방송사업 활성화를 위해 거의 매주 Korean Hour를 빠뜨리지 않고 시청하며, 광고배열을 살피고, 광고를 초단위로 세어본다는 그의 세심한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  그는 상공회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활동영역이 늘어갈수록 홍콩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상이 제고되며 한인기업의 이미지가 상승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 신념을 바탕으로 경영인의 마인드를 가지고 최대효과를 거두기 위해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해가고 있는 강호천 회장.

그의 열정에 더하여 회원사 간의 협력과 임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는 홍콩한인 상공회가 앞으로 더욱 혁신적인 발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을 확신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하였다.
Posted by 홍콩달팽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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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가족이 만난 사람들] 홍콩한인회 잡지 교민소식에 연재했던 인터뷰 기사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한국에서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닌) 를 다닌 세대들이라면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푸른 천막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반공교육 영화를 본 기억도 있을것이다. 요즘은 많이 변해서 대화와 외교로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통일의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학교에서 많이 불렀던 노래처럼 하나의 언어, 같은 조상과 역사를 가진 남한과 북한이 다시 하나의 나라가 되는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집단이 있다.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회의 김구환 회장을 만나보았다.

글 원정아



민주평화통일(이하 '평통') 자문위원회는 어떤 것이면 무슨 일을 하는지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우선 설치 근거를 말씀 드리자면,
우리나라 헌법92조 및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법(1981.3.14제정)에 근거한 초당적, 범국민적 대통령 통일 자문 기구입니다.  대통령이 의장이며 그 아래 20인 이내의 부의장으로 구성되는데 현재는 김상근 수석 부의장(전 제2건국 범추진위)이 실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위촉된 위원들이 하는 일은,
- 국내외 통일 여론을 수렴하고
-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 범국민적 통일 의지와 역량의 결집을 유도하고
- 무보수, 명예직으로서 국가와 민족 앞에 헌신 봉
사하며, 지역과 직능 분야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 그 밖의 평화통일 정책에 관한 필요한 사항을 대
통령(평통 자문회의 의장)에게 자문 건의를 합니다.



위원의 구성 및 임기는 어떻게 되나요?

민주평통의 구성은 국내의 지역 대표와 직능분야 (해외포함)의 대표급 인사로 구성되며 현재 위원수는 국내(11,588), 해외(22개 지역 1,631)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임기는 2년으로 위촉되며, 5회 연임이 가능합니다.



평통에 가입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합니까?

가입이 아니라 위촉입니다.  자기추천제가 있습니다만 홍콩 및 몇몇 해외지역은 제외되었습니다.  우선 홍콩을 포함한 재외동포의 위촉과정을 살펴보면, 재외공관장이 추천하며 홍콩은 전통적으로 형평성과 공정을 기하기 위해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홍콩의 각 한인 단체에서 한인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분을 대상으로 추천을 받아 해당 교민회 또는 교민 단체에서 추천된 인사를 사무처에 통보하고 대통령(의장)의 재가를 받아 위촉 됩니다.



홍콩에서는 어떤 분들이 활동하셨고 어떤 분들이 현재 활동하고 계시는지요?

1기의 시작인 1981년 이원표(전 홍콩한인회장), 손상용 (전 홍콩한인회장), 손한주(전 홍콩한인회장), 위원이 위촉된 이래, 장규찬(전 홍콩한인회장), 김재강 (전 홍콩한인회장), 현경섭 (전 홍콩한인회장), 황은수(전 홍콩한인회장), 김일고 (전 홍콩한인 상공회장), 박세원 (전 홍콩한인상공회장), 이성진 (전 홍콩한인회장), 최규정(마카오), 이순정(전 홍콩한인회장), 최명원(전 홍콩한인회감사), 백정현(전 홍콩한인상공회장), 이내건 (전 홍콩한인상공회장), 김규팔 (전 홍콩한인회이사), 홍순원 (전 홍콩한인회이사), 김호용 (전 홍콩한인회 이사), 변호영 (현 홍콩한인회장), 성석주 (전 홍콩한인상공회장), 신영수 (전 홍콩한인체육회장), 남영기 (전 홍콩한인상공회장), 이호철 (전 홍콩한인상공회장), 이대영 (전 홍콩한국학원장),
강효영 (전 홍콩한인상공회 부회장), 이면관 (전 홍콩한인상공회장), 김진만 (전 홍콩한인회 부회장), 오재훈 (전 홍콩 한인회감사), 서병길 (전홍콩 한인체육회장) 이상의 분들이 전임 위원이셨고,

현 12기 (2005. 6.30 ~ 2007. 7)는 다음과 같은 분들이 활동하고 계십니다.
방혜자 (나라사랑 어머니회장, 10~12기),  장은명 (홍콩한인 여성회장, 10~12기), 송영란 (홍콩 한인여성회 부회장), 김혜원 ( CITY UNIV. 교수), 류재우 (홍콩 한인상공회장),  홍의택 (홍콩 한인회 부회장),
천재영 (전 홍콩한인체육회장, 10~12기), 신홍우 (홍콩 한인상공회 부회장, 10~12기), 강봉환 (한국학원장),  이병욱 (홍콩한인회 전무이사), 김범수 (홍콩 한인상공회 사무총장), 김병렬 (홍콩한인회 상임감사), 장승엽 (홍콩 한인회 감사, 교포 2세), 석청영 (마카오 10~12기), 김구환 (홍콩 한인상공회 사무총장, 10~12기)
*** ( ) 안은 위촉 당시 직책 및 연임 횟수임 ***

상기 전/현 위원들의 직책에서 보듯이 홍콩한인사회를 위해 애쓰셨거나 현재 봉사하고 계시는 분들이 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민주평통홍콩지회는 어떤 일을 주로 하고 계신지요?

우선 12기에 한 활동을 살펴보면
- 해외 자문위원을 위한 국내Workshop 참가
- 통일 연구원 초청 간담회
- 한인회 행사를 이용하여 학생들 및 교민에게 태극기 전달
- 북한문제 전문가 초청 세미나 개최
- 한국국제학교 및 한국학원 글짓기대회 개최
- 홍콩 한인 각 단체 (한인회, 상공회, 여성회, 체육회, 나라사랑 어머니회 등)에서 주최하는 각종 대소 행사에 지원 또는 후원해 왔습니다.
- 또한, 민주평통 위원들은 본국에서 준공무원에 상당하는 신분을 보장받고 있어 대사관(혹은 총영사관)과 교민과의 가교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지회장님의 통일관에 대해서 의견을 주시겠습니까?

전문가가 아니라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선 반세기 동안의 경제적, 문화적인 차이의 극복이 중요하다고 보며 정책입안자나 당사자들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통일을 이룩한 독일이 좋은 예가 되겠지요.  때로는 남북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곤 하여 통일에 대한 순수성이 변한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도, 국민도 많이 변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하며, 하루빨리 서로의 신뢰를 회복하여 순수하고 허심탄회한 민족적 염원인 통일로의 접근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해외라는 제한된 여건 속에서 살고 있지만 통일에 대한 의지를 공론화 하고 공감대형성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요.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언제 홍콩에 오셨고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1990년 중소기업(호신섬유)의 홍콩 지사장으로 부임하여 현재는 조그만 물류회사(PACIFIC UNITED LOGISTIC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홍콩 한인사회에서 여러 단체에서 봉사하고 계신 걸로 아는데 어떤 직책으로 봉사하셨는지 이 기회에 알려 주시지요.

94년부터 시작한 봉사활동은 한인회, 상공회 이사, 상공회 사무총장을 거쳐 현재는 상공회 감사, 홍콩한국국제학교 재단이사, 한인회 부회장, 민주평통 홍콩지회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아마 재 홍콩생활의 구성은 하루 중 40%는 잠과 가정에서, 30%는 비즈니스로 그리고 나머지 30%는 각 단체에 할애하며 생활하고 있어요.  좀 바쁘게 사는 편입니다.
이런 게 공명심 때문이라고도 하겠지만,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이라고 하고 싶은데 아니면 뭐, 그냥 취미생활 한다고 예쁘게 여겨 주세요.
지난 연말 국내 언론에 이슈가 되었던 노무현대통령의 평통 연설에 대한 코멘트가 있으십니까?

글쎄요.  공교롭게도 연말 연시에 있은 2-3번에 걸친 민주평통 위원을 대상으로 한 연설 시에 국가정책 설명과정에서 선택한 단어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색하게 들린 부분이 있었지만, 국가원수의 발언에 대해 코멘트 할 입장은 아니라고 봅니다.  대신에 요즈음은 의사전달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어 연설내용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면 다양한 Cannel을 이용하여 제 자신의 의사를 전달 할 수 있었으니까요.



끝으로 하고 실은 말씀은?

'평화통일' 이라는 명제아래 국가이익 실현을 위해 정책 입안자들은 좌, 우익을 따지는 이데올로기의 재탕이나 통일의 정책적 이용이 아닌 미래지향적 평화통일을 위해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할 것이며, 현지의 우리는 동포사회 주변에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여론 조성 및 공감대 형성에 우리모두 이바지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니까요.



정치적인 이벤트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몇 년전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소를 501마리 몰고 육로로 북한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보고 받았던 충격이 기억난다. '아.. 삼팔선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거구나.' 어린 시절부터 당연히 선이 그어져 있으니 넘어서는 안된다고, 여행이 자율화되어 세계를 다 누비고 다녀도 선 너머의 그 곳은 당연히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내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중국을 거쳐서 백두산 여행도 갈 수 있고, 배를 타면 금강산 여행도 다녀올 수 있지만 자유롭게 북한 땅을 걷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어울리는 여행은 언제쯤 가능할까.
더 늦어지기 전에, 아직 이산가족 노인들이 살아계시고, 사람들이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통일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남북한의 경제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남한과 북한이 공통단어가 점점 더 적어져서 말이 통하지 않고,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기 전에.
Posted by 홍콩달팽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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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가족이 만난 사람들] 홍콩한인회 잡지 교민소식에 연재했던 인터뷰 기사입니다.


"뷰티풀 크로스", 그 아름답고 즐거운 콘서트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카리스 앙상블"을 만나다.


글 원정아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리펄스 베이의 커피숍에서 인터뷰할 카리스 앙상블 멤버들(이희연, 신성화, 이소정 씨)와 총무 이경준씨를 기다린다.  작년 가을, 삶의 무게에 힘겨워 하던 중 인터뷰 사전조사차 참여했던 "Beautiful Concert". 그 감동의 무대에서 아름다운 삶의 모습들을 보며 감사하고, 나누는 마음에 인색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새롭게 힘을 얻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기대기도 하고, 채우기도 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지... 그렇게 아름다운 향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여운을 남긴다.


 

 콘서트가 곧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콘서트인지...



오는 5월 24일 홍콩 시티홀 콘서트홀에서 7시반에 "뷰티풀 크로스"라는 콘서트를 개최합니다.  "뷰티풀 콘서트"라는 이름은 한국 전통악기, 밴드, 서양 클래식 등의 다양한 공연 팀이 참가해서 문화가 교차한다는 의미로서의 크로스, 더한다는 플러스(+)의 심벌로서 따뜻한 사랑과 마음이 만난다는 의미로서의 크로스를 나타냅니다.
피아니스트 희야, 젊은 국악 팀들, 한국에서 웃찾사 밴드와 보아 등 정식 활동을 하고 있는 밴드들 등 15여명의 쟁쟁한 뮤지션들이 무대에서는데요, 재즈, 클래식, 삼바 등 다양하고 특이한 음악들을 접할 수 있는 퓨전음악회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자선 음악회하면 음악의 질보다는 자선이라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음악회에서는 음악의 질도일반음악회와 비교해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돈을 내고 와서 즐겁게 음악 감상을 하시고, 수익금은 자선사업에 기부되니 보람도 있고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으실 거예요.  지난번 "Beautiful Concert"의 컨셉이 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돕는 것이었는데, 감동적이지만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아프셨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번 콘서트의 컨셉은 장애인들과 일반인들의 어울림의 마당을 열어보고 싶었어요.  음악도 가볍고 흥겨운 것들 위주로, 쉽게 듣고 따라 부를 수도 있고, 리듬에 맞춰 어깨춤을 춰도 좋을 경쾌한 분위기로, 공연이 끝나고 기쁨의 마음으로 돌아가실 수 있는 공연을 기획했어요.



 

 자선음악회라고 들었는데, 어떤 곳에 도움을 나누는지..



지난 번 음악회의 수익금은 홍콩의 시각장애인 학교인"Ebenezer School"과 자폐아를 위한 특수프로그램인 "Rainbow Project"에 각25만불씩 기부했고요, 이번 콘서트의 수익금은 홍콩의 지체부자유자와 장애자들을 위한 기관인 PHAB과 6살 이하 발달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조기 치료 및 교육을 제공하는 자선단체인 Watchdog Early Learning and Development Centre에 기부하게 됩니다. 어떤 한 기관만을 도우려는 의도는 없고, 장애인들만 돕는다는 생각도 없어요.  질 높은 문화활동을 통해서 지역사회에 수익을 환원하는 것이 저희 목표로, 어떤 기관을 돕게 될 지는 각 행사 별로 달라요.  저희들도 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로 혜택을 많이 입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반면에 현지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기부하는 문화가 약한 것 같아요.  세계 속에서 한국 사람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듯이 저희 활동이 한국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 향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음악회들을 기획하는 Beautiful Mind Charity (이하 BMC)의 소개..



BMC는 작년 6월에 설립되었는데요, 나눔과 함께 사는 삶을 장려하기 위해 배일환 교수님(이화여대 교수, 첼리스트)이 설립한 미국 Beautiful Mind Fund의 취지를 이어받아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기금을 마련하고 지역사회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 재정적인 후원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이희연씨가 배일환 교수님 제자인데, 작년 5월에 "Beautiful Concert"를 홍콩에서 열 수 있는지 연락을 받았고, 평소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예원학교 서울예고 동창생인 신정화씨와 이소정씨가 함께하게 되었고, 그 후 배우자들이 합세하여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총무와 기획을 맡아주시는 분까지 9명의 커미티 멤버가 있구요, 각 행사를 할 때 많은 자원봉사자 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작년 10월 첫 번째 자선 음악회인 "Beautiful Concert"를 성황리에 마쳤고, 11월에는 "Beautiful Mind Charity Limited"라는 이름으로 홍콩에 정식 자선단체로 등록했습니다.  홍콩 공연 후, 같은 공연을 한국에서 개최했는데 공연 후 외무부에서 저희의 활동이 외무부의 활동 컨셉과 일치하므로 향후 공식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올해 3월에는 한국에도 지부를 설립하여 의미 있는 활동의 범위를 전 세계로 넓혀갈 계획이고 앞으로도 음악회에 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회, 청소년 아마추어 음악회, 장애아들을 위한 음악교실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 그 수익을 환원하려고 합니다.
저희 꿈이 있다면 홍콩뿐만 아니라 가까운 동남아시아부터라도 뜻을 같이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각 나라에 연속적으로 지부가 생기고, 활동을 넓혀가는 것이에요.


 

 홍콩속으로.....



지난번엔 관객의 대부분이 한국사람들, 그리고 외국인들로 현지 홍콩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이 안타까웠어요.  "Han Hong Friendship Association"이라는 홍콩사람들의 모임이 있는데, 조환복 전 총영사님이 발족한 단체로 교수, 기자, 전직 장관, 배용준 팬클럽 회장 등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에요.  홍콩 사회에 영향력 있는 이분들의 후원을 받아, 현지 사람들에게 입 소문이 나고, 많이 참여도 하게 되어 우리 잔치가 아닌 함께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선이라는 목적 외에도 한국의 전통음악이라든지, 한국의 젊은 미술가들의 작품 등을 해외에도 알리는 효과도 얻고, 한국 사람들의 위상을 높일 수 있길 바라거든요.

BMC핵심멤버인 이희연, 신정화, 이소정씨는 음악을 전공하고 "카리스 앙상블"을 통해 그 음악적 재능을 사용하고 있다.  카리스는 그리스어로 "은혜"를 뜻하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상이나 호의를 기대하지 않는 관용을 의미한다고 한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 자신이 가진 시간과 재능을 사용해서 남과 나누려는 넉넉한 마음들로 세상에 다가서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외면과 내면의 아름다움이 모두 느껴졌다.
연한 녹색 새싹이 다시 돋아나는 희망의 봄, 홍콩 교민 여러분들께 가족과 함께 문화적 만족감과 이웃사랑의 보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공연에 참석해 볼 것을 권하면서 글을 마친다.


(문의사항: BMC 총무 9747-5114)

Posted by 홍콩달팽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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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한인회 잡지 교민소식에 연재했던 인터뷰 기사입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중문대학교 평생교육원 한국어담당 이수경씨를 만나서
02-01 11:56 | HIT : 220


글 원정아

이수경 선생님과의 인터뷰 전에 학생들의 수업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 집중하고 있는 20여명의 학생들을 보는 순간 긴장도 되고, 기분이 참 좋았다.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서 1년간 매주 4시간씩 토요일 황금 오후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학생들..  무엇이 그들에게 그런 동기 부여를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학생들이 준비한 짧은 연극을 보고, 수업을 잠깐이나마 함께 했다.  오늘 수업은 친구들이 모여서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는 내용이었다.  한 친구가 조금 늦어서 사과하며 늦은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는데, 간단했지만 그네들의 행동과 말투에서 진지함이 묻어났다.  수업이 끝난 후 자원한 학생들에 한해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학생들은 수줍어하며 남기를 망설였지만, 8명 정도 학생이 남았다.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과의 나눈 이야기들

1. 한국어를 얼마나 공부했나요?
1~3년 정도.  대부분의 학생들의 수준은 천천히 말하면서 교과서에 나오는 듯한 정중한 어투를 쓰고 있었다.

2. 왜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나요?
제일 많았던 대답은 한국친구가 있어서.  기타 대답은 '그냥 언어를 공부하는 게 좋아서', '거래처 중에 한국 회사가 있어서', '한국을 혼자서 여행하고 싶어서' 등등.

3. 한국 드라마를 보면 대체로 이해할 수 있나요?
'대체로 알아 들을 수 있다.'고 대답한 학생은 1명 이었다.  '드라마의 말은 너무 빨라서 달라서 금새 이해하기 힘들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로 교과서로 공부했기 때문에, 실제로 생활에서 쓰여지는 말투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드라마를 다 알아 듣는 것은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국 드라마, 대중 음악, 음식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4. 한인 사회에 부탁이나 요청사항이 있습니까?
'한국 사람들과 한국어로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많았다.  '어디에 가면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냐? '고 묻는 학생들도 있었다.  '김밥이나 찌개 등 한국 음식들을 배울 수 있는 강좌가 있다면 꼭 참석하고 싶다.'는 학생도 인상적이었다.



이수경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들

1. 홍콩에 오신지는 얼마나 되셨고, 한국어를 가르치신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요?
"2000년 봄에 홍콩에 왔으니까, 올해로 6년이 되네요.  그 전에는 일본에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국제 교류 일을 하면서 한국어를 가르쳤습니다.  어느새,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고 가르친 것이 거의 10년이 되었네요.  처음 홍콩에 왔을 때는 이 곳의 한국어 교육이 미약한 것을 보고 무척이나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홍콩은 한국과 가까운 곳인데도 일본어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니까요. 당시, 홍콩에는 대학과정의 수업은 물론, 사설학원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관이 드물었어요.  하지만, 2001년부터 중문대의 평생교육원에서 성인을 위한 한국어 과정이 신설되었고, 제가 한국어 과정을 담당하면서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2개 과정에, 70여명 정도 학생이 수강했지만, 2002년에 자격증 과정이 신설되고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재는 1년에 3학기 과정으로, 한 학기 380명 정도의 학생이 있습니다."

2. 어떤 계기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까?
"1993년에서 1999년까지 일본에서 체류했습니다.  그때는 일본어를 전혀 못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학교에도 가야 했고, 일본 생활을 시작해야 해서 정말로 막막했는데, 외국인을 위해서 일본어교육에 전념하시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도 해외 생활을 해 보신 경험이 계셔서 언어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외국인이 겪는 어려움 등을 잘 이해 주시면서 항상 따뜻하게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그 선생님의 체계화된 일본어 수업을 들으면서, 저도 한국인으로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알기 쉽고 체계 있게 가르치고 싶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본에서 살던 미야자키라는 도시에는 한국어 교육을 공부할 대학이 없었지요.  그래서, 일본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일본어 교육 과정'을 수강하면서 한국어 교육에 응용하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 교육부 산하의 '국제 교류 프로그램'의 강사로 선발되어 초등학교에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대학의 '국제 교류센터'에서도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를 지도해주시고 격려해주신 일본어 선생님 덕택에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제 삶의 전환점이 된 또 다른 생활을 발견하게 된 셈이지요.  

3. 오랜 시간 한국어 교육을 해 오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이 있나요?
"어떤 학생을 찍어서 말하기 보다는, 생활이 바쁠 텐데도 몇 년씩이나 꾸준히 공부해 주는 학생들이 가장 기억에 남고 고맙지요.  특히 저희 자격증 과정의 학생들은 제가 모두 존경합니다.  1년이라는 짧지 않는 시간을 개인적인 일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주 4시간의 수업에 참여하고 그 많은 숙제를 꼼꼼히 하면서 중간시험과 학기말 시험을 거쳐서 과정을 마치는 학생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특히 저희 과정은 출석도 엄격한 인텐시브 코스라서 졸업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런데, 전혀 읽지도 못했던 학생들이 일년 후에 한국어로 말 할 수 있고 쓸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끈기와 노력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기에 책 한 권을 마치는 날의 감격은 모두 특별하답니다.

그렇게 1년의 초급과정을 마치고 나면 대부분 다시 1년 과정의 중급 수업을 듣는데,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4년 째 꾸준히 공부해 오고 있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 중에, 가정 주부였던 중년의 학생이 1년 과정을 마치고 저에게 정성 어린카드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발음도, 읽기도, 쓰기도 더뎠던 그녀는 계속 그만 두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이야기 하셨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라는 제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버텼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사히 초급 과정을 마쳤다고 고맙다고 카드를 보냈는데, 오히려 제가 더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지난 말하기 대회에서 저희 학교의 학생들이 다수 참여하여 입상한 데 대해서도 감사하고 싶어요.  그리고 찬조 출연한 저희 과정의 학생들이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부를 때는 가슴이 찡 ~ 했답니다.  모두 그렇게 한국, 한국어를 사랑하고 좋아한다니 고마울 뿐이에요.  제 바램은 이 학생들 중에서 한국어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분이 나와서 홍콩의 한국어 교육을 함께 이끌어 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항상 빨리 한국어 선생님이 되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4. 효과적인 한국어 교수 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중문대학교 한국어과정의 특징을 무엇입니까?
"일본의 경우 오래 전부터 연구가 이뤄져서 외국어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체계가 잘 잡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1990년도 말부터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붐이 일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교수법의 연구와 교재 등에서 미약한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고 흥미를 잃지 않게 수업하는 것이 가장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과정은 회화중심보다는 문형 중심으로 기본 틀을 설명한 후에 반복되는 문형 연습을 통해서 문장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키는데, 한국어를 정확하고 상황에 맞게 표현 할 수 있도록 홍콩 사람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존댓말을 처음부터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교수법으로 단어의 뜻을 영어나 중국어로 단순히 설명해 주는것이 아닌 문맥과 전후 유추를 통해 한국어는 한국적으로 생각해 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수업시간에는 한국인이 되어야죠 그리고, 한국어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화, 정서도 함께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저희 중문대학교에서2002년에 홍콩에서는 처음으로 증서 코스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주 4시간의 수업에 출석하고, 숙제, 시험 등에 합격하면 수료증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각 학기는 3월, 7월, 11월에 개강합니다."

5. 한국어 능력시험과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외국어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수준을 평가하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 공인된 시험이 몇 몇 있지만, 그 중에서 <한국어 능력시험> 은 한국의 교육인적 자원부에서 실행되고 있는 국가시험으로 홍콩에서는 2003년(제7회)부터 한국어 능력시험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7회와 8회는 주홍콩 한국총영사관이 주관하고 중문대가 실시 교육기관으로 실행되었으나, 점차 규모가 확대되어 작년에는 주홍콩한국총영사관주관, 한국국제학교 실행, 중문대학교 협찬으로 실시되었습니다.

<제1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그 동안 열심히 공부해온 학생들에게 저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해 주고 싶었습니다.  선물을 주고 싶었지요.  또, 시험과는 다른 목표와 동기를 주면서 홍콩 사회에 한국어도 선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총 영사관, 한인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상공회, 관광 협회를 비롯하여 여러 기업에서 도와주신 덕택에 지난 11월에 성공리에 실시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지속적인 후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홍콩에서 처음 실시된 말하기 대회였지만, 학생들의 말하기 실력에 감탄할 정도로 수준 높은 대회였습니다. "

6. 앞으로 홍콩에 한국어를보급해 나가기 위해서 해야 할 숙제가 있다면?
"할 일은 너무 너무 많지요.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은 한국어가 홍콩 정부보조금인 CEF(Contiuing Education Fund)에 포함되게 하는 것입니다.  홍콩 정부가 마련한 평생교육기금인데, 그 분야에 해당하는 교육을 받고, 일정 수준 이상의 시험을 통과하거나 자격증을 따면 교육비의80%를 환급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홍콩사람들의 수가 많이 늘어날 겁니다.  언어에서는 불어, 독일어, 일본어가 2004년도에 추가 되어서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한국어가 CEF에 추가될 수 있도록 민간차원의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CEF가입뿐만 아니라 홍콩의 중.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제 2외국어로 선택할 수 있거나, 클럽활동으로 청소년들에게 한국어를 소개할 수 있도록 저희 한인사회, 영사관이 홍콩 교육기관을 설득하고 노력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각 대학들은 재정이 어렵기 때문에, 저희 한인 사회, 기업들이 민간 차원의 기금을 마련하여 홍콩의 각 대학에서도 한국어 과정이 신설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여러과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계획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협회" 나 "한국 문화 교류 센터"등을 신설하여 증가하고 있는 한국어 교육기관의 관리자와 중재자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7. '한류' 전후로 학생들의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고, 예전에는 초급반 학생들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요즘은 배우기 전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좋아요..'  '이쁘다' 등과 같은 기본적인 인사말과 단어들을 알고 오는 학생들이 늘어났습니다. 한국노래,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저보다도 더 잘 압니다.  그리고 한국의 대중문화 영향인지 학생들의 연령대가 낮아져서 최근에는 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도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은 한국의 문화도 더불어 배우고, 한국에 대해서 호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땅은 작고, 인구도 그리 많지 않지만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을 잘 이해하고, 호감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이 늘어난다면 우리나라의 설 자리는 더 늘어날 것이다.  아마도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에 이수경 선생님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검도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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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jongamk.tistory.com BlogIcon 핑구야 날자 2009.08.19 0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타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달팽가족이 만난 사람들] 홍콩한인회 잡지 교민소식에 연재했던 인터뷰 기사입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현경섭 한인회 고문을 만나서

01-05 13:37 | HIT : 347
홍콩에 온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한인회 사무실에 가본 건 처음이었다.  상완 MTR역으로 나와 코스코 타워를 찾아갔다.  길치라고 늘 놀림 받는 나이지만 다행히도 헤매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회사가 끝나자마자 달려가서 약속시간 여섯 시에 딱 맞출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직원 분들이 아직까지도 일을 하고 있었다.  간단히 목례를 하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만나 뵙기로 한 현경섭 한인회 고문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죄송스러워서 오래 기다리셨냐고 여쭤보니 다른 일도 있고 하셔서 겸사겸사 볼 일을 보러 사무실에 오셨다고 한다.  숨을 돌리고,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사실 참 막막했다.  홍콩 한인사회에서 들어 봄직한 직책은 다 맡아 보셨었고, 인생 내공이 뛰어난 분을 앞에 두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자, 한인회 유주현 과장님이 들어와 도와주었다.  "현고문님, 고문님들의 대표로 현고문님을 모셨으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예전 홍콩 한인사회에 대한 이야기들과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주세요.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홍콩에서 시간을 보내고, 앞으로도 오래 머물 사람이라서 그런지 예전 모습들이 궁금하더라구요."
                                                                                                                    
글 원정아

홍콩한인회 역사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홍콩 한인회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 보자.  1948년 정치적인상황 때문에 상해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10여 가구의 교민들이 한인회를 설립했다.  5'16군사혁명 이후 1960년대에는 수출주도형성장을 추구해 온 한국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홍콩에서 무역상사들의 해외지점 및 출장소가 설치되기 시작하여, 생돈, 마른살 오징어, 한천, 홍삼 등의 농산물을 위주로 수출에 힘쓰게 되었다.  1968-70년에는 주재상사들이 많이 진출하였고, 또 지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하고 자영하는 분들도 늘어나서 한인회의 주축을 이루었으며 이 시기에 코리아센터도 세워졌다.  1970년대 초 코리아센터에는 19개 상사가 진출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더 활발한 한국교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교민회 기구가 개편, 확대되면서 각종 한인 단체들이 생겨났다.    

1979년 홍콩교민 축구팀은 처음으로 대전에서 치뤄진제 60회 전국체전에 참가하여 해외동포팀 중 준우승을 차지했다.  1988년 문을 연 '홍콩 한국학교'가 1994년 현재 싸이완호에 위치한 새로 지은 건물로 이전하였고, 이름도 '한국국제학교'로개명하였다.  1997년 말부터 시작된 IMF 경제파란으로 1998년 한해만 약 1,500명의 교민이 홍콩을 떠나는 험난한 시기도 지났으나, 다시 교민들이 서서히 증가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홍콩이민 1세대

"1962년, 한국에서 대학을 1년 마치고, 홍콩에 왔어요.  와서 몇 년 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공부를 마치고 다시 홍콩으로 다시 돌아온 게 1968년 11월이네요.  "한국에서 보낸 시간보다 홍콩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많으시네요?' 하고 여쭤보니, "그래서 그런지 여전에는 한국 식당에 가도 사람들이 한국말로 안 물어보고, 영어메뉴를 가져다주고 영어로 묻곤 했어요. 아마도 옷이나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한국 사람들은 검은색이나 회색 같은 어두운 단색 계통을 즐겨 입었는데, 나는 컬러가 들어간 밝은 색 옷을 즐겨 입곤 했거든요.  그런 부분은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라고 답하신다.  결혼만 한국에서 하고 바로 홍콩으로 와서 살림을 차렸어요. 아이들도 다 여기에서 컸고, 큰 아이는 홍콩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홍콩으로 돌아와 금융 쪽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작은 아이는 딸인데, 콜롬비아 대학에서 석사 마치고 홍콩에서 나이키 인터내셔널에 근무하고 있어요.  지금은 싱가폴에 파견근무 나가있고.."   가정과 사업이 다홍콩에 기반을 두고 있고, 홍콩에서 반평생을 보내신 분답게 전적이 화려하다.  

1970년 중반에는 토요학교 학원장, 전무이사, 부회장을 맡았고, 1985-87년에는 상공회장을, 1996-98년에는 한인회장을 역임하셨다.  지금은 한인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한다.


코리안 센터, 뭉치면 산다 ?

한국상품 직매장 설치 운영을 통한 동남아 수출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증대와 교민들의 경제 및 문화적 지위 향상과 국위 선양을 위한 목적으로 1969년 Connaught Road에(현 이화원위치)코리아 센터를 설치하고 운영하였다고 한다.  한 때는 주홍콩 한국 총영사관, 코트라 무역전시관, 일반회사, 한인회, 한국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사는 아파트, 한인교회, 토요학교, 그리고 아가씨가 있는 한국 술집까지 한국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이 다 모여 있기도 해서, 정말 말 그래도 코리아 센터였다고 한다.  후에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였고, 1997년 홍콩 현지인에게 매각되었지만 창립 후 30년간 홍콩에 한국인 촌을 형성하고 한국인들의 생활근거지였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더 끈끈하게 정을 나눌 수 있었지.  매일 저녁에 19층에 올라가면 다들 모이는 분위기였고, 술을 주고받고 그렇게 지냈었지."

한인회의 가장 의미 깊었던 활동은 한국국제학교 설립

한국사람들은 유난한 교육열은 잘 알려져 있다.  현 고문님에게 한인회 활동 중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보람 있었던 일을 여쭤보았더니,"한국국제학교 설립"이라는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홍콩에 지사들이 생기고, 한국인들이 진출하자 대부분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게 되었다. "손상용씨가 한인회장을 할 때, 삼성, 한일합섬 등 홍콩에서 제일 규모가 컸던 3개 회사의 지점장들이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지. 그런데 돈이 없었으니까, 일단은 모금을 시작했지.  한인한국학교 건축설립 기구를 만들고, 토요학교 바자회도 하고, 토요학교 수업료 잉여금을 모으면서 기금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돈이 300만불 쯤 모였을 때 (1988년) Pok Fu Lam Road 서남쪽에 위치한 유치원 자리를 임대해서, 홍콩 한국학교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변기 파이프가 터져서 오물이 교실에 튀기도 하고 매우 열악했지요."  그러다가 1989년 홍콩정청 Sir David Ford가 재홍콩 한인 상공인들을 가든파티에 초청하여 홍콩의 중국 반환에 따른 설명 및 이에 대한 경제협조를 부탁했는데, 손한주 당시 한인회장이 참여하여 학교 신출부지를 할애해 주도록 요청을 했고, 이를 승낙 받았다.  토지는 확보하였는데, 건물을 지을 자금이 부족했다.  

"처음에 건설비가 미화 600만불 정도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었고, 한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어요. 그런데 한국 정부에서는 미심쩍어 하는거야.  그도 그럴 것이 5공때 LA 한 교포가 학교를 짓는다고 100만불을 받아갔는데, 사람은 사라지고 돈은 없어졌거든.  그래서 지원을 받기가 힘들었는데, 장규찬씨, 김재강씨 등이 국회 문교분과 위원을 찾아가 예산 할당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로비를 하였고, 모금을 하는 금액에 맞춰서 지원을 받기로 약속했어요.  실제로 학교가 생기는 가를 보기 위해서, 1불 기금이 모이면, 한국 정부에서도 1불을 지원해 주기로 한 거지."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힘이 모여 1994년 학교 준공식을 거행했으며, 세계 재외한국인 교민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국제학교를 세우는 위업을 달성했다.  현재 한국국제학교는 영어과정과 한국어 과정을 동시에 운영하고, 중학교 과정까지 운영하고 있어 명실공히 국제학교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해봉OB팀을 아시나요? 

홍콩은 프로축구 리그가 3부로 나뉘어 있고, 프로팀만 해도 36개가 있다고 한다.  특히 1970년에서 1980년 중반까지는 홍콩 축구 전성기로 아시아 최초로 프로화되었는데, 이 때는 한국 축구 대표선수들이 홍콩에 진출하는 것이 꿈이었다.  

"한 때 손상용씨랑 몇 명이 주동이 되어서 해봉OB팀이라는 홍콩 프로축구팀을 인수했었어요.  그때는 세이코가 제일 강했는데, 이 팀은 1리그 12팀 중에서 꼴찌에서 헤맸었어.  그런데 우리가 인수해서 한국 선수들을 많이 기용하고, 3위까지 했었지.  그러니까 홍콩축구연맹에서 룰을 바꿔버려서 외국선수가 2명 이상 뛸 수 없게 해버렸어. 그래서 팔아버렸지."  이 때 꺽다리 선수 김재한, 명골키퍼 변호영, 아시아 최고 인기선수 이회택, 박이천, 박병철, 유건수, 이차만 선수 등이 활동하며 인기를 누렸다.  그래서 인지 한국사람으로 자랑스러웠던 때를 여쭤보니, 역시 축구랑 관계가 있었다.  "월드컵 축구 했을 때"라고 대답하신다. "월드컵 때 클럽하우스에 모여서 축구를 보곤 했는데, 그러면 홍콩 사람들도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서 그런지 한국을 응원하더라구.  홍콩 사람들이 영국의 영향을 받아서 의외로 축구 수준이 높거든.  같이 앉아서 응원하면서 보는데 신이 났었지." 

전국체전 당시의 에피소드 등 옛날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는데, 아쉽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짧은 만남을 한인회와 교민들에게 당부의 말씀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나는 나름대로 한인회에 봉사도 하고, 기여도 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젊은 세대들이 그 뒤를 이어서 잘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크게 분쟁도 없고 다들 잘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한인사회에 기여했으면 합니다."

Posted by 검도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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