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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가족이 만난 사람들] 홍콩한인회 잡지 교민소식에 연재했던 인터뷰 기사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한국에서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닌) 를 다닌 세대들이라면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푸른 천막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반공교육 영화를 본 기억도 있을것이다. 요즘은 많이 변해서 대화와 외교로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통일의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학교에서 많이 불렀던 노래처럼 하나의 언어, 같은 조상과 역사를 가진 남한과 북한이 다시 하나의 나라가 되는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집단이 있다.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회의 김구환 회장을 만나보았다.

글 원정아



민주평화통일(이하 '평통') 자문위원회는 어떤 것이면 무슨 일을 하는지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우선 설치 근거를 말씀 드리자면,
우리나라 헌법92조 및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법(1981.3.14제정)에 근거한 초당적, 범국민적 대통령 통일 자문 기구입니다.  대통령이 의장이며 그 아래 20인 이내의 부의장으로 구성되는데 현재는 김상근 수석 부의장(전 제2건국 범추진위)이 실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위촉된 위원들이 하는 일은,
- 국내외 통일 여론을 수렴하고
-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 범국민적 통일 의지와 역량의 결집을 유도하고
- 무보수, 명예직으로서 국가와 민족 앞에 헌신 봉
사하며, 지역과 직능 분야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 그 밖의 평화통일 정책에 관한 필요한 사항을 대
통령(평통 자문회의 의장)에게 자문 건의를 합니다.



위원의 구성 및 임기는 어떻게 되나요?

민주평통의 구성은 국내의 지역 대표와 직능분야 (해외포함)의 대표급 인사로 구성되며 현재 위원수는 국내(11,588), 해외(22개 지역 1,631)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임기는 2년으로 위촉되며, 5회 연임이 가능합니다.



평통에 가입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합니까?

가입이 아니라 위촉입니다.  자기추천제가 있습니다만 홍콩 및 몇몇 해외지역은 제외되었습니다.  우선 홍콩을 포함한 재외동포의 위촉과정을 살펴보면, 재외공관장이 추천하며 홍콩은 전통적으로 형평성과 공정을 기하기 위해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홍콩의 각 한인 단체에서 한인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분을 대상으로 추천을 받아 해당 교민회 또는 교민 단체에서 추천된 인사를 사무처에 통보하고 대통령(의장)의 재가를 받아 위촉 됩니다.



홍콩에서는 어떤 분들이 활동하셨고 어떤 분들이 현재 활동하고 계시는지요?

1기의 시작인 1981년 이원표(전 홍콩한인회장), 손상용 (전 홍콩한인회장), 손한주(전 홍콩한인회장), 위원이 위촉된 이래, 장규찬(전 홍콩한인회장), 김재강 (전 홍콩한인회장), 현경섭 (전 홍콩한인회장), 황은수(전 홍콩한인회장), 김일고 (전 홍콩한인 상공회장), 박세원 (전 홍콩한인상공회장), 이성진 (전 홍콩한인회장), 최규정(마카오), 이순정(전 홍콩한인회장), 최명원(전 홍콩한인회감사), 백정현(전 홍콩한인상공회장), 이내건 (전 홍콩한인상공회장), 김규팔 (전 홍콩한인회이사), 홍순원 (전 홍콩한인회이사), 김호용 (전 홍콩한인회 이사), 변호영 (현 홍콩한인회장), 성석주 (전 홍콩한인상공회장), 신영수 (전 홍콩한인체육회장), 남영기 (전 홍콩한인상공회장), 이호철 (전 홍콩한인상공회장), 이대영 (전 홍콩한국학원장),
강효영 (전 홍콩한인상공회 부회장), 이면관 (전 홍콩한인상공회장), 김진만 (전 홍콩한인회 부회장), 오재훈 (전 홍콩 한인회감사), 서병길 (전홍콩 한인체육회장) 이상의 분들이 전임 위원이셨고,

현 12기 (2005. 6.30 ~ 2007. 7)는 다음과 같은 분들이 활동하고 계십니다.
방혜자 (나라사랑 어머니회장, 10~12기),  장은명 (홍콩한인 여성회장, 10~12기), 송영란 (홍콩 한인여성회 부회장), 김혜원 ( CITY UNIV. 교수), 류재우 (홍콩 한인상공회장),  홍의택 (홍콩 한인회 부회장),
천재영 (전 홍콩한인체육회장, 10~12기), 신홍우 (홍콩 한인상공회 부회장, 10~12기), 강봉환 (한국학원장),  이병욱 (홍콩한인회 전무이사), 김범수 (홍콩 한인상공회 사무총장), 김병렬 (홍콩한인회 상임감사), 장승엽 (홍콩 한인회 감사, 교포 2세), 석청영 (마카오 10~12기), 김구환 (홍콩 한인상공회 사무총장, 10~12기)
*** ( ) 안은 위촉 당시 직책 및 연임 횟수임 ***

상기 전/현 위원들의 직책에서 보듯이 홍콩한인사회를 위해 애쓰셨거나 현재 봉사하고 계시는 분들이 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민주평통홍콩지회는 어떤 일을 주로 하고 계신지요?

우선 12기에 한 활동을 살펴보면
- 해외 자문위원을 위한 국내Workshop 참가
- 통일 연구원 초청 간담회
- 한인회 행사를 이용하여 학생들 및 교민에게 태극기 전달
- 북한문제 전문가 초청 세미나 개최
- 한국국제학교 및 한국학원 글짓기대회 개최
- 홍콩 한인 각 단체 (한인회, 상공회, 여성회, 체육회, 나라사랑 어머니회 등)에서 주최하는 각종 대소 행사에 지원 또는 후원해 왔습니다.
- 또한, 민주평통 위원들은 본국에서 준공무원에 상당하는 신분을 보장받고 있어 대사관(혹은 총영사관)과 교민과의 가교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지회장님의 통일관에 대해서 의견을 주시겠습니까?

전문가가 아니라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선 반세기 동안의 경제적, 문화적인 차이의 극복이 중요하다고 보며 정책입안자나 당사자들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통일을 이룩한 독일이 좋은 예가 되겠지요.  때로는 남북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곤 하여 통일에 대한 순수성이 변한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도, 국민도 많이 변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하며, 하루빨리 서로의 신뢰를 회복하여 순수하고 허심탄회한 민족적 염원인 통일로의 접근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해외라는 제한된 여건 속에서 살고 있지만 통일에 대한 의지를 공론화 하고 공감대형성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요.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언제 홍콩에 오셨고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1990년 중소기업(호신섬유)의 홍콩 지사장으로 부임하여 현재는 조그만 물류회사(PACIFIC UNITED LOGISTIC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홍콩 한인사회에서 여러 단체에서 봉사하고 계신 걸로 아는데 어떤 직책으로 봉사하셨는지 이 기회에 알려 주시지요.

94년부터 시작한 봉사활동은 한인회, 상공회 이사, 상공회 사무총장을 거쳐 현재는 상공회 감사, 홍콩한국국제학교 재단이사, 한인회 부회장, 민주평통 홍콩지회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아마 재 홍콩생활의 구성은 하루 중 40%는 잠과 가정에서, 30%는 비즈니스로 그리고 나머지 30%는 각 단체에 할애하며 생활하고 있어요.  좀 바쁘게 사는 편입니다.
이런 게 공명심 때문이라고도 하겠지만,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이라고 하고 싶은데 아니면 뭐, 그냥 취미생활 한다고 예쁘게 여겨 주세요.
지난 연말 국내 언론에 이슈가 되었던 노무현대통령의 평통 연설에 대한 코멘트가 있으십니까?

글쎄요.  공교롭게도 연말 연시에 있은 2-3번에 걸친 민주평통 위원을 대상으로 한 연설 시에 국가정책 설명과정에서 선택한 단어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색하게 들린 부분이 있었지만, 국가원수의 발언에 대해 코멘트 할 입장은 아니라고 봅니다.  대신에 요즈음은 의사전달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어 연설내용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면 다양한 Cannel을 이용하여 제 자신의 의사를 전달 할 수 있었으니까요.



끝으로 하고 실은 말씀은?

'평화통일' 이라는 명제아래 국가이익 실현을 위해 정책 입안자들은 좌, 우익을 따지는 이데올로기의 재탕이나 통일의 정책적 이용이 아닌 미래지향적 평화통일을 위해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할 것이며, 현지의 우리는 동포사회 주변에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여론 조성 및 공감대 형성에 우리모두 이바지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니까요.



정치적인 이벤트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몇 년전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소를 501마리 몰고 육로로 북한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보고 받았던 충격이 기억난다. '아.. 삼팔선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거구나.' 어린 시절부터 당연히 선이 그어져 있으니 넘어서는 안된다고, 여행이 자율화되어 세계를 다 누비고 다녀도 선 너머의 그 곳은 당연히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내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중국을 거쳐서 백두산 여행도 갈 수 있고, 배를 타면 금강산 여행도 다녀올 수 있지만 자유롭게 북한 땅을 걷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어울리는 여행은 언제쯤 가능할까.
더 늦어지기 전에, 아직 이산가족 노인들이 살아계시고, 사람들이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통일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남북한의 경제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남한과 북한이 공통단어가 점점 더 적어져서 말이 통하지 않고,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기 전에.
Posted by 홍콩달팽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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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한인회 잡지 교민소식에 연재했던 인터뷰 기사입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중문대학교 평생교육원 한국어담당 이수경씨를 만나서
02-01 11:56 | HIT : 220


글 원정아

이수경 선생님과의 인터뷰 전에 학생들의 수업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 집중하고 있는 20여명의 학생들을 보는 순간 긴장도 되고, 기분이 참 좋았다.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서 1년간 매주 4시간씩 토요일 황금 오후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학생들..  무엇이 그들에게 그런 동기 부여를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학생들이 준비한 짧은 연극을 보고, 수업을 잠깐이나마 함께 했다.  오늘 수업은 친구들이 모여서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는 내용이었다.  한 친구가 조금 늦어서 사과하며 늦은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는데, 간단했지만 그네들의 행동과 말투에서 진지함이 묻어났다.  수업이 끝난 후 자원한 학생들에 한해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학생들은 수줍어하며 남기를 망설였지만, 8명 정도 학생이 남았다.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과의 나눈 이야기들

1. 한국어를 얼마나 공부했나요?
1~3년 정도.  대부분의 학생들의 수준은 천천히 말하면서 교과서에 나오는 듯한 정중한 어투를 쓰고 있었다.

2. 왜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나요?
제일 많았던 대답은 한국친구가 있어서.  기타 대답은 '그냥 언어를 공부하는 게 좋아서', '거래처 중에 한국 회사가 있어서', '한국을 혼자서 여행하고 싶어서' 등등.

3. 한국 드라마를 보면 대체로 이해할 수 있나요?
'대체로 알아 들을 수 있다.'고 대답한 학생은 1명 이었다.  '드라마의 말은 너무 빨라서 달라서 금새 이해하기 힘들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로 교과서로 공부했기 때문에, 실제로 생활에서 쓰여지는 말투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드라마를 다 알아 듣는 것은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국 드라마, 대중 음악, 음식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4. 한인 사회에 부탁이나 요청사항이 있습니까?
'한국 사람들과 한국어로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많았다.  '어디에 가면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냐? '고 묻는 학생들도 있었다.  '김밥이나 찌개 등 한국 음식들을 배울 수 있는 강좌가 있다면 꼭 참석하고 싶다.'는 학생도 인상적이었다.



이수경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들

1. 홍콩에 오신지는 얼마나 되셨고, 한국어를 가르치신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요?
"2000년 봄에 홍콩에 왔으니까, 올해로 6년이 되네요.  그 전에는 일본에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국제 교류 일을 하면서 한국어를 가르쳤습니다.  어느새,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고 가르친 것이 거의 10년이 되었네요.  처음 홍콩에 왔을 때는 이 곳의 한국어 교육이 미약한 것을 보고 무척이나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홍콩은 한국과 가까운 곳인데도 일본어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니까요. 당시, 홍콩에는 대학과정의 수업은 물론, 사설학원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관이 드물었어요.  하지만, 2001년부터 중문대의 평생교육원에서 성인을 위한 한국어 과정이 신설되었고, 제가 한국어 과정을 담당하면서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2개 과정에, 70여명 정도 학생이 수강했지만, 2002년에 자격증 과정이 신설되고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재는 1년에 3학기 과정으로, 한 학기 380명 정도의 학생이 있습니다."

2. 어떤 계기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까?
"1993년에서 1999년까지 일본에서 체류했습니다.  그때는 일본어를 전혀 못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학교에도 가야 했고, 일본 생활을 시작해야 해서 정말로 막막했는데, 외국인을 위해서 일본어교육에 전념하시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도 해외 생활을 해 보신 경험이 계셔서 언어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외국인이 겪는 어려움 등을 잘 이해 주시면서 항상 따뜻하게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그 선생님의 체계화된 일본어 수업을 들으면서, 저도 한국인으로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알기 쉽고 체계 있게 가르치고 싶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본에서 살던 미야자키라는 도시에는 한국어 교육을 공부할 대학이 없었지요.  그래서, 일본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일본어 교육 과정'을 수강하면서 한국어 교육에 응용하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 교육부 산하의 '국제 교류 프로그램'의 강사로 선발되어 초등학교에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대학의 '국제 교류센터'에서도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를 지도해주시고 격려해주신 일본어 선생님 덕택에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제 삶의 전환점이 된 또 다른 생활을 발견하게 된 셈이지요.  

3. 오랜 시간 한국어 교육을 해 오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이 있나요?
"어떤 학생을 찍어서 말하기 보다는, 생활이 바쁠 텐데도 몇 년씩이나 꾸준히 공부해 주는 학생들이 가장 기억에 남고 고맙지요.  특히 저희 자격증 과정의 학생들은 제가 모두 존경합니다.  1년이라는 짧지 않는 시간을 개인적인 일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주 4시간의 수업에 참여하고 그 많은 숙제를 꼼꼼히 하면서 중간시험과 학기말 시험을 거쳐서 과정을 마치는 학생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특히 저희 과정은 출석도 엄격한 인텐시브 코스라서 졸업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런데, 전혀 읽지도 못했던 학생들이 일년 후에 한국어로 말 할 수 있고 쓸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끈기와 노력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기에 책 한 권을 마치는 날의 감격은 모두 특별하답니다.

그렇게 1년의 초급과정을 마치고 나면 대부분 다시 1년 과정의 중급 수업을 듣는데,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4년 째 꾸준히 공부해 오고 있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 중에, 가정 주부였던 중년의 학생이 1년 과정을 마치고 저에게 정성 어린카드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발음도, 읽기도, 쓰기도 더뎠던 그녀는 계속 그만 두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이야기 하셨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라는 제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버텼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사히 초급 과정을 마쳤다고 고맙다고 카드를 보냈는데, 오히려 제가 더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지난 말하기 대회에서 저희 학교의 학생들이 다수 참여하여 입상한 데 대해서도 감사하고 싶어요.  그리고 찬조 출연한 저희 과정의 학생들이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부를 때는 가슴이 찡 ~ 했답니다.  모두 그렇게 한국, 한국어를 사랑하고 좋아한다니 고마울 뿐이에요.  제 바램은 이 학생들 중에서 한국어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분이 나와서 홍콩의 한국어 교육을 함께 이끌어 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항상 빨리 한국어 선생님이 되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4. 효과적인 한국어 교수 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중문대학교 한국어과정의 특징을 무엇입니까?
"일본의 경우 오래 전부터 연구가 이뤄져서 외국어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체계가 잘 잡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1990년도 말부터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붐이 일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교수법의 연구와 교재 등에서 미약한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고 흥미를 잃지 않게 수업하는 것이 가장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과정은 회화중심보다는 문형 중심으로 기본 틀을 설명한 후에 반복되는 문형 연습을 통해서 문장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키는데, 한국어를 정확하고 상황에 맞게 표현 할 수 있도록 홍콩 사람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존댓말을 처음부터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교수법으로 단어의 뜻을 영어나 중국어로 단순히 설명해 주는것이 아닌 문맥과 전후 유추를 통해 한국어는 한국적으로 생각해 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수업시간에는 한국인이 되어야죠 그리고, 한국어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화, 정서도 함께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저희 중문대학교에서2002년에 홍콩에서는 처음으로 증서 코스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주 4시간의 수업에 출석하고, 숙제, 시험 등에 합격하면 수료증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각 학기는 3월, 7월, 11월에 개강합니다."

5. 한국어 능력시험과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외국어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수준을 평가하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 공인된 시험이 몇 몇 있지만, 그 중에서 <한국어 능력시험> 은 한국의 교육인적 자원부에서 실행되고 있는 국가시험으로 홍콩에서는 2003년(제7회)부터 한국어 능력시험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7회와 8회는 주홍콩 한국총영사관이 주관하고 중문대가 실시 교육기관으로 실행되었으나, 점차 규모가 확대되어 작년에는 주홍콩한국총영사관주관, 한국국제학교 실행, 중문대학교 협찬으로 실시되었습니다.

<제1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그 동안 열심히 공부해온 학생들에게 저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해 주고 싶었습니다.  선물을 주고 싶었지요.  또, 시험과는 다른 목표와 동기를 주면서 홍콩 사회에 한국어도 선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총 영사관, 한인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상공회, 관광 협회를 비롯하여 여러 기업에서 도와주신 덕택에 지난 11월에 성공리에 실시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지속적인 후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홍콩에서 처음 실시된 말하기 대회였지만, 학생들의 말하기 실력에 감탄할 정도로 수준 높은 대회였습니다. "

6. 앞으로 홍콩에 한국어를보급해 나가기 위해서 해야 할 숙제가 있다면?
"할 일은 너무 너무 많지요.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은 한국어가 홍콩 정부보조금인 CEF(Contiuing Education Fund)에 포함되게 하는 것입니다.  홍콩 정부가 마련한 평생교육기금인데, 그 분야에 해당하는 교육을 받고, 일정 수준 이상의 시험을 통과하거나 자격증을 따면 교육비의80%를 환급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홍콩사람들의 수가 많이 늘어날 겁니다.  언어에서는 불어, 독일어, 일본어가 2004년도에 추가 되어서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한국어가 CEF에 추가될 수 있도록 민간차원의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CEF가입뿐만 아니라 홍콩의 중.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제 2외국어로 선택할 수 있거나, 클럽활동으로 청소년들에게 한국어를 소개할 수 있도록 저희 한인사회, 영사관이 홍콩 교육기관을 설득하고 노력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각 대학들은 재정이 어렵기 때문에, 저희 한인 사회, 기업들이 민간 차원의 기금을 마련하여 홍콩의 각 대학에서도 한국어 과정이 신설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여러과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계획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협회" 나 "한국 문화 교류 센터"등을 신설하여 증가하고 있는 한국어 교육기관의 관리자와 중재자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7. '한류' 전후로 학생들의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고, 예전에는 초급반 학생들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요즘은 배우기 전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좋아요..'  '이쁘다' 등과 같은 기본적인 인사말과 단어들을 알고 오는 학생들이 늘어났습니다. 한국노래,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저보다도 더 잘 압니다.  그리고 한국의 대중문화 영향인지 학생들의 연령대가 낮아져서 최근에는 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도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은 한국의 문화도 더불어 배우고, 한국에 대해서 호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땅은 작고, 인구도 그리 많지 않지만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을 잘 이해하고, 호감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이 늘어난다면 우리나라의 설 자리는 더 늘어날 것이다.  아마도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에 이수경 선생님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검도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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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jongamk.tistory.com BlogIcon 핑구야 날자 2009.08.19 0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타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달팽가족이 만난 사람들] 홍콩한인회 잡지 교민소식에 연재했던 인터뷰 기사입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현경섭 한인회 고문을 만나서

01-05 13:37 | HIT : 347
홍콩에 온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한인회 사무실에 가본 건 처음이었다.  상완 MTR역으로 나와 코스코 타워를 찾아갔다.  길치라고 늘 놀림 받는 나이지만 다행히도 헤매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회사가 끝나자마자 달려가서 약속시간 여섯 시에 딱 맞출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직원 분들이 아직까지도 일을 하고 있었다.  간단히 목례를 하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만나 뵙기로 한 현경섭 한인회 고문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죄송스러워서 오래 기다리셨냐고 여쭤보니 다른 일도 있고 하셔서 겸사겸사 볼 일을 보러 사무실에 오셨다고 한다.  숨을 돌리고,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사실 참 막막했다.  홍콩 한인사회에서 들어 봄직한 직책은 다 맡아 보셨었고, 인생 내공이 뛰어난 분을 앞에 두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자, 한인회 유주현 과장님이 들어와 도와주었다.  "현고문님, 고문님들의 대표로 현고문님을 모셨으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예전 홍콩 한인사회에 대한 이야기들과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주세요.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홍콩에서 시간을 보내고, 앞으로도 오래 머물 사람이라서 그런지 예전 모습들이 궁금하더라구요."
                                                                                                                    
글 원정아

홍콩한인회 역사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홍콩 한인회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 보자.  1948년 정치적인상황 때문에 상해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10여 가구의 교민들이 한인회를 설립했다.  5'16군사혁명 이후 1960년대에는 수출주도형성장을 추구해 온 한국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홍콩에서 무역상사들의 해외지점 및 출장소가 설치되기 시작하여, 생돈, 마른살 오징어, 한천, 홍삼 등의 농산물을 위주로 수출에 힘쓰게 되었다.  1968-70년에는 주재상사들이 많이 진출하였고, 또 지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하고 자영하는 분들도 늘어나서 한인회의 주축을 이루었으며 이 시기에 코리아센터도 세워졌다.  1970년대 초 코리아센터에는 19개 상사가 진출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더 활발한 한국교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교민회 기구가 개편, 확대되면서 각종 한인 단체들이 생겨났다.    

1979년 홍콩교민 축구팀은 처음으로 대전에서 치뤄진제 60회 전국체전에 참가하여 해외동포팀 중 준우승을 차지했다.  1988년 문을 연 '홍콩 한국학교'가 1994년 현재 싸이완호에 위치한 새로 지은 건물로 이전하였고, 이름도 '한국국제학교'로개명하였다.  1997년 말부터 시작된 IMF 경제파란으로 1998년 한해만 약 1,500명의 교민이 홍콩을 떠나는 험난한 시기도 지났으나, 다시 교민들이 서서히 증가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홍콩이민 1세대

"1962년, 한국에서 대학을 1년 마치고, 홍콩에 왔어요.  와서 몇 년 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공부를 마치고 다시 홍콩으로 다시 돌아온 게 1968년 11월이네요.  "한국에서 보낸 시간보다 홍콩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많으시네요?' 하고 여쭤보니, "그래서 그런지 여전에는 한국 식당에 가도 사람들이 한국말로 안 물어보고, 영어메뉴를 가져다주고 영어로 묻곤 했어요. 아마도 옷이나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한국 사람들은 검은색이나 회색 같은 어두운 단색 계통을 즐겨 입었는데, 나는 컬러가 들어간 밝은 색 옷을 즐겨 입곤 했거든요.  그런 부분은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라고 답하신다.  결혼만 한국에서 하고 바로 홍콩으로 와서 살림을 차렸어요. 아이들도 다 여기에서 컸고, 큰 아이는 홍콩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홍콩으로 돌아와 금융 쪽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작은 아이는 딸인데, 콜롬비아 대학에서 석사 마치고 홍콩에서 나이키 인터내셔널에 근무하고 있어요.  지금은 싱가폴에 파견근무 나가있고.."   가정과 사업이 다홍콩에 기반을 두고 있고, 홍콩에서 반평생을 보내신 분답게 전적이 화려하다.  

1970년 중반에는 토요학교 학원장, 전무이사, 부회장을 맡았고, 1985-87년에는 상공회장을, 1996-98년에는 한인회장을 역임하셨다.  지금은 한인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한다.


코리안 센터, 뭉치면 산다 ?

한국상품 직매장 설치 운영을 통한 동남아 수출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증대와 교민들의 경제 및 문화적 지위 향상과 국위 선양을 위한 목적으로 1969년 Connaught Road에(현 이화원위치)코리아 센터를 설치하고 운영하였다고 한다.  한 때는 주홍콩 한국 총영사관, 코트라 무역전시관, 일반회사, 한인회, 한국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사는 아파트, 한인교회, 토요학교, 그리고 아가씨가 있는 한국 술집까지 한국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이 다 모여 있기도 해서, 정말 말 그래도 코리아 센터였다고 한다.  후에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였고, 1997년 홍콩 현지인에게 매각되었지만 창립 후 30년간 홍콩에 한국인 촌을 형성하고 한국인들의 생활근거지였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더 끈끈하게 정을 나눌 수 있었지.  매일 저녁에 19층에 올라가면 다들 모이는 분위기였고, 술을 주고받고 그렇게 지냈었지."

한인회의 가장 의미 깊었던 활동은 한국국제학교 설립

한국사람들은 유난한 교육열은 잘 알려져 있다.  현 고문님에게 한인회 활동 중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보람 있었던 일을 여쭤보았더니,"한국국제학교 설립"이라는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홍콩에 지사들이 생기고, 한국인들이 진출하자 대부분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게 되었다. "손상용씨가 한인회장을 할 때, 삼성, 한일합섬 등 홍콩에서 제일 규모가 컸던 3개 회사의 지점장들이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지. 그런데 돈이 없었으니까, 일단은 모금을 시작했지.  한인한국학교 건축설립 기구를 만들고, 토요학교 바자회도 하고, 토요학교 수업료 잉여금을 모으면서 기금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돈이 300만불 쯤 모였을 때 (1988년) Pok Fu Lam Road 서남쪽에 위치한 유치원 자리를 임대해서, 홍콩 한국학교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변기 파이프가 터져서 오물이 교실에 튀기도 하고 매우 열악했지요."  그러다가 1989년 홍콩정청 Sir David Ford가 재홍콩 한인 상공인들을 가든파티에 초청하여 홍콩의 중국 반환에 따른 설명 및 이에 대한 경제협조를 부탁했는데, 손한주 당시 한인회장이 참여하여 학교 신출부지를 할애해 주도록 요청을 했고, 이를 승낙 받았다.  토지는 확보하였는데, 건물을 지을 자금이 부족했다.  

"처음에 건설비가 미화 600만불 정도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었고, 한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어요. 그런데 한국 정부에서는 미심쩍어 하는거야.  그도 그럴 것이 5공때 LA 한 교포가 학교를 짓는다고 100만불을 받아갔는데, 사람은 사라지고 돈은 없어졌거든.  그래서 지원을 받기가 힘들었는데, 장규찬씨, 김재강씨 등이 국회 문교분과 위원을 찾아가 예산 할당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로비를 하였고, 모금을 하는 금액에 맞춰서 지원을 받기로 약속했어요.  실제로 학교가 생기는 가를 보기 위해서, 1불 기금이 모이면, 한국 정부에서도 1불을 지원해 주기로 한 거지."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힘이 모여 1994년 학교 준공식을 거행했으며, 세계 재외한국인 교민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국제학교를 세우는 위업을 달성했다.  현재 한국국제학교는 영어과정과 한국어 과정을 동시에 운영하고, 중학교 과정까지 운영하고 있어 명실공히 국제학교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해봉OB팀을 아시나요? 

홍콩은 프로축구 리그가 3부로 나뉘어 있고, 프로팀만 해도 36개가 있다고 한다.  특히 1970년에서 1980년 중반까지는 홍콩 축구 전성기로 아시아 최초로 프로화되었는데, 이 때는 한국 축구 대표선수들이 홍콩에 진출하는 것이 꿈이었다.  

"한 때 손상용씨랑 몇 명이 주동이 되어서 해봉OB팀이라는 홍콩 프로축구팀을 인수했었어요.  그때는 세이코가 제일 강했는데, 이 팀은 1리그 12팀 중에서 꼴찌에서 헤맸었어.  그런데 우리가 인수해서 한국 선수들을 많이 기용하고, 3위까지 했었지.  그러니까 홍콩축구연맹에서 룰을 바꿔버려서 외국선수가 2명 이상 뛸 수 없게 해버렸어. 그래서 팔아버렸지."  이 때 꺽다리 선수 김재한, 명골키퍼 변호영, 아시아 최고 인기선수 이회택, 박이천, 박병철, 유건수, 이차만 선수 등이 활동하며 인기를 누렸다.  그래서 인지 한국사람으로 자랑스러웠던 때를 여쭤보니, 역시 축구랑 관계가 있었다.  "월드컵 축구 했을 때"라고 대답하신다. "월드컵 때 클럽하우스에 모여서 축구를 보곤 했는데, 그러면 홍콩 사람들도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서 그런지 한국을 응원하더라구.  홍콩 사람들이 영국의 영향을 받아서 의외로 축구 수준이 높거든.  같이 앉아서 응원하면서 보는데 신이 났었지." 

전국체전 당시의 에피소드 등 옛날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는데, 아쉽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짧은 만남을 한인회와 교민들에게 당부의 말씀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나는 나름대로 한인회에 봉사도 하고, 기여도 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젊은 세대들이 그 뒤를 이어서 잘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크게 분쟁도 없고 다들 잘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한인사회에 기여했으면 합니다."

Posted by 검도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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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가족이 만난 사람들] 홍콩한인회 잡지 교민소식에 연재했던 인터뷰 기사입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홍콩 한국 교회 협의회 김성복 목사를 만나다

12-07 13:21 | HIT : 169

KCR, Kowloon Tong역에서 내려 높은 건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 골목길을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높은 건물들과 사람들이 늘 북적거리는 홍콩에서 정원을 갖춘 낮고, 널찍한 집들만 있는 그 골목이 낯설었다.  간판과 대문 안으로 보이는 것들로 짐작해보니 호텔과 결혼 이벤트와 관련된 로맨틱한 건물들, 종교 단체들이 많은 것 같았다.  한 15분 남짓 걷자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제일 교회 간판이 보였다.  전화를 드리고 나서도 좀 늦는다 싶었는지 집사님 한 분이 대문 밖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집사님이 목사님 방까지 안내해 주셨다.  실내는 전체적으로 밝았고, 2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아이들의 글과 그림으로 장식되어 정겨웠다.  목사님 방은 책이 가득 메우고 있고, 잘 정리되어 있어서 차분한 느낌이 났다.  상냥하고 나지막한 목사님의 목소리가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한참을 헤매고 찾아온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에어컨을 틀어주시고 손수 찬 음료수 한 잔을 내주셨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글 원정아

교회가 참 아늑하고 느낌이 좋았다.  건물의 일부를 대여한 것이 아니라2층짜리 독립건물에 마당도 있었다.  제일교회는1991년 설립되어 올해로 14년이 되며, 김 목사님은제 2대 목사이다.  1997년 7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시점에 김목사님은 가족들과 함께 홍콩으로 건너왔고, 지금은 큰 아들은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으며, 사모님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작은 아들만 홍콩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먼저 제일 교회를 소개해주셨다. 

홍콩에 있는 7천명의 한국교민을 잘 섬기는 교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제일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 더 나은 지역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건전한 사회를 추구하는 일환으로 지금은 각 교회에서 진행하고 있어서 많은 분들이 익숙해진 아버지 학교를 홍콩에 처음으로 도입하여 행복한 가정생활의 중요성을 인식시켰다.  "사람들이건전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사회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므로 교회가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문화적으로 혜택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홍콩의 한인 청소년들을 위해서 청소년 집회와 수련회를 열고, 한국에서 CCM 가수 등을 초청해서 음악회를 여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가장 작은이에게 대접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소외된 이들에 대한 다양한 구제와 섬김의 활동을 통해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매년 2회 한국에서 약과 함께 의료팀을 데리고 와서, 중국 공장직공들에게 의료 구제 활동을 하고 있다.  박봉에 장시간 단순노동을 하고 있는 10대 후반의 젊은 여자 직공들은 아파도 병원을 찾을 여유가 없어서 그냥 지내고 있는데, 그들을 찾아가 진료해 주는 것이다.  단기간에 많은 사람을 돌봐야 하므로 1-3일 정도 소요가 되는데도 홍콩에서도 매번 20-30 여명의 교인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팀과 함께 네일 아트와 미용기술을 가진 분들이 함께 봉사를 가는데, 매달 500-700원의 적은 월급을 받아 경제적인 여유가 없지만, 한창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은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여자 직공들은 머리를 다듬어 주고, 손톱을 꾸며 주면 마냥 기뻐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같이 기쁘고, 나누는 보람을 느낍니다.  봉사는 받는 사람도 도움이 되지만 봉사를 하는 사람은 보람을 느끼고, 성숙해지게 됩니다.  홍콩 교인들도 처음에는 무섭다거나, 바쁘다면서 가기를 꺼려했던 분들도 한번 참가해서 그 기쁨과 보람을 맛보면 다음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하시곤 합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홍콩이지만, 다른 이를 섬기며 나누는 여유와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홍콩 고아원이나, 유니세프, 북한에 주로 구호약품을 보내는 단체인 유진벨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쓰나미나 파키스탄 지진과 같은 재해가 일어났을 때 구호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1년에 2번 바자회를 열어 모금활동을 하고, 그 수입으로 구제와 봉사활동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에는 자체적으로 게스트룸을 갖추고 있는데, 작지만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방은 남, 여 구별되어 있는데 10개의 침대가 구비되어 있으며, 최대 20-3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중국에서 일하는 사역자들이 비자 문제 갱신 및 재충전을 위해 홍콩을 방문할 경우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  오지에서 일하며 한국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오신 분들도 많아 교회에서는 직접 김치를 담궈 항상 구비하여, 오시는 분들이 마음 놓고 정성껏 담근 김치를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했다.  여행객 중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며, 교회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드물게 있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묵어가기도 한단다.  객지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을 때 도움을 받았으니 두고두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 같다.

"한 교회, 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공동으로 모여서 하면 더 좋은 일들이 있습니다. 교회협의회는 바로 그 함께 해서 좋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홍콩제일교회 홈페이지 : http://www.hkcheil.org/

이어서 자연스럽게 교회협의회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정식명칭은 홍콩 한국 교회협의회이며, 현재 12개교회가 가입되어 있다.  기본적으로는 홍콩에 있는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만을 회원으로 한다.  교회 간의 상호 연합과 친선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홍콩 한국 교회협의회는 1995년 정식으로 발족하였으며, 연 1회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고, 교회간의 과도한 경쟁과 오해를 해소하는 것을 주된 활동으로 하고 있다.  기독교를 건전하게 보존하도록 사이비 기독교 단체나, 이적단체들이 홍콩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공동으로 대처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광적인 믿음이나 건전하지 못한 종교활동이 개인의 생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건전한 종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독교를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교단에 구애 받지 않는 초 교파적 모임으로 바른 성경해석을 하고,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교회는 다 회원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홍콩에 교회가 생겼다고 해서 바로협회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개척 후 2년 정도 시험기간을 거쳐서 검증을 한 후에 회원 교회들의 판단을 거쳐서 협회에 가입할 수 있다.  현재 가입되지 않은 한인교회가 2곳이 있는데, 아직 개 척후 2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목회자들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서 식사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함으로써 친목을 도모하고, 정보를 교환한다고 한다.  단합된 힘을 바탕으로 한인회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동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교회협의회는 각 회원교회에서 교회이전, 목사 이취임, 장로임직 등의 행사가 있을 경우 참여하여 축하, 격려하며 교회간의 체육대회, 세미나, 간증집회, 음악회 등을 공동으로 개최하기도 한다.  그 일환으로 연대, 이대 노래 선교단을 초청해서 음악회를 여는 일도 하고 있다.  "좋은 음악은 영혼을 치료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좋은 음악을 접할 기회를 마련하고, 그 외에도 교민들을 위한 문화행사를 더 풍부하게 하려고 합니다.  연대, 이대 노래 선교단의 경우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아 음악적인 수준도 매우 높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상에서는 부모님을 정성껏 공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 가르침을 따라 어른들을 모시고, 그 지혜와 가르침을 받는 일도 하고 있다. "홍콩에 계신 65세가 넘은 원로 교민들의 모임인 '장자회'가 있습니다.  어른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장자회 어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건전한 가치관 보급에 힘써야 


마지막으로 교회가 교민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여쭤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적으로 건전한 교민사회, 가치관이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가정생활, 직장생활, 지역사회 형성을 위해서 개인이 가져야 할 바른 마음자세를 장려하고, 술, 도박 등 지나치면 해로운 것들을 멀리 하게 해서 사회를 정화하는데 도움을 주어야겠지요. 그리고 소외된 이들을 도와주고, 장학금 사업과 구제 사업 등도 꾸준히 해야겠지요."

목사님은 또한 어린이들은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면서, 교육사업에 대한지원도 강조했다.  홍콩의 교회들은 매년 1회 연합하여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는데, 이 때 한국국제학교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보고 거기서 걷힌 헌금을 전액 한국학교에 기부하고 있다.  책이나 컴퓨터를 기부하는 등 물질적인 지원은 물론, 학생들과 학부형에게 한국국제학교를 홍보하고 소개하는 일에도 교회들이 앞장서고 있다.
교회협의회는 회장, 총무, 서기 등 3명의 임원이 있는데, 임기는 1년이며 1회 연임이 가능하여 최대 2년으로 임기를 제한하고 있다. 

교회는 다양한 종파가 있고, 교리도 다른 부분들이 있어서 갈등과 분열의 소지가 많이 있고, 예전에는 실제로 오해로 인한 잡음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랑과 이해, 나눔을 기대하고 교회로 나가는데, 목회자 간의 갈등, 교회간의 다툼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킨다.  그런 오해와 갈등을 조정하고 막는다는 점에서 교회협의회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내가 속해 있는 교회만 생각하는 집단 이기주의가 아닌, 기독교인 전체,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를 생각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집단으로 남아주길 기대해 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목사님이 교회 안을 안내해 주셨다.  예배당과 게스트룸, 식당 등을 돌아보다 보니 산양들과 사람들이 있는, 자연이 아름다운 사진이 있었다.  윈난성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교회에서 매년 1회 '비전트립'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생활이 어렵고, 자연환경이 험난한 이 곳 가정에 10마리씩 양을 지원해주고 온단다.  일시적인 구제가 아니라,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경제기반을 마련해주고 오는 것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자연경관이 때묻지 않고, 색이 살아 있었다.  여름 휴가철에 그런 곳에서 자연을 보고,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 우리의 영혼을 정화하고, 타인에게 도움도 주고 올 수 있다면 일석삼조가 아닌가 싶었다.  모두들 자기 일로 바쁜 이 도시 홍콩에서 늘 삶을 되새기고, 주위 사람들을 살피는 이런 일들을 교회가 계속 해 준다면 우리의 삶이 훨씬 여유 있고 풍요로워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교회 문을 나섰다.
Posted by 검도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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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pringdad.tistory.com BlogIcon 춘부장 2009.08.27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5년 전에 홍콩에 일이 있어 한 10여차례 간 적이 있었는데..그때 주일이 겹치면 애진교회에 갔었습니다. 만나뵈러 간 분 따라서요. 반갑네요.